왜 기업들은 거짓 가격을 숨기려 할까 — 드립 프라이싱의 심리학과 규제
매일의 지평
저가로 유인한 뒤, 마지막에 터지는 요금들

2026년 8월, 영국의 경쟁·시장청(CMA)이 Trainline, Virgin Atlantic, RED Driving School을 상대로 조사를 개시했다. 혐의는 명확했다. 소비자에게 전체 가격을 미리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차표를 예약하다가, 항공권 가격을 보다가, 운전면허 학원 수강료를 계산하다가 갑자기 추가 요금이 튀어나오는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악의적인 속임수’라고만 볼 수 있을까? 사실 그 뒤에는 인간의 구매 심리를 파고드는 정교한 경제학이 숨어 있다.
드립 프라이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드립 프라이싱(Drip Pricing)은 기업이 상품 가격의 일부만 광고하고, 구매 과정을 진행하면서 나머지 수수료를 단계적으로 공개하는 기법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정의에 따르면, 호텔의 리조트 요금처럼 필수적으로 내야 하는 비용이 있는가 하면, 업그레이드나 추가 옵션처럼 선택할 수 있는 비용도 포함된다.
인터넷 판매자, 자동차 렌탈사, 항공사, 열차 예약 플랫폼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이 기법을 사용한다.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산업이어도, 핵심 원리는 동일하다. 초반에 저렴한 가격으로 관심을 끌고, 구매 결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추가 비용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관행이 문제인 이유는 소비자가 구매 결정을 내릴 때 초기 가격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최종 가격이 아닌 첫 화면에 떠있는 금액에 의존해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FTC의 분석에 따르면,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실제 가치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
왜 기업들은 이런 기법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할까
‘드립 프라이싱이 작동한다’는 말은 경제학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간단하지만 냉정한 이유다. 사람들은 이미 구매 과정에 깊숙이 들어간 상태에서 추가 요금을 마주하면, 처음부터 다시 다른 옵션을 비교하기보다 그냥 결제를 진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행동경제학적으로 이를 설명하면, 인간의 의사결정은 완전히 이성적이지 않다는 점에 닿아 있다. 초기 가격에 이미 심리적으로 ‘결정’한 상태에서, 마지막 단계의 추가 비용은 ‘이미 시작한 일을 포기하기 싫어하는 심리’에 먹혀 들어간다. 버튼을 눌렀고, 정보를 입력했고, 결제 페이지까지 왔는데, 이 시점에서 돌아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손실’처럼 느껴진다.
기업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판매 전환율을 높이는 입증된 방법이다. 낮은 초기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구매 과정에서 추가 요금으로 수익을 확보한다. 소비자들이 경쟁 상품을 비교하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다른 기업의 가격과 비교하려면 그들도 모두 전체 비용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법은 특히 경제적 문해력이 낮은 소비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복잡한 가격 구조를 읽고 최종 비용을 계산해낼 능력이 떨어지는 집단일수록 피해를 더 입는다. 행동경제학자들이 지적한 ‘퇴행적 복지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빈곤층이나 금융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현상이다.
영국의 규제 움직임과 그 의미

영국 경쟁당국의 이번 조사는 단순한 사건 적발이 아니다. 전체 규제 방향의 전환을 신호한다. 미국에서도 FTC가 드립 프라이싱의 경제학을 연구하고 문제를 공식화해온 바 있지만, 영국이 이제 실제 집행 단계에 나선 것이다.
워싱턴 DC에서는 2026년 소비자보호법 개정(B26-0174)을 통과시켜 드립 프라이싱 규제를 강화했다. 이는 전자상거래 기업들에게 더 엄격한 투명성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규제 당국이 주목하는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 소비자의 ‘알 권리’다. 구매 결정을 내릴 때 정보 비대칭 상태에 놓여있으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둘째, 공정한 경쟁이다. 드립 프라이싱으로 비용을 감추는 기업과 투명하게 가격을 표시하는 기업 사이에는 부정한 경쟁 환경이 형성된다.
CMA의 조사 대상이 된 세 기업의 경우, 소비자들이 보상받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법 위반이 확인되면 피해 소비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규제가 단순한 ‘주의’를 넘어 강제력을 갖춘다는 의미다.
투명한 가격표시가 왜 어려운가
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들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완전 투명한 가격 표시로 전환하면, 초기에 고객을 유입시키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리조트 수수료나 항공사 수화물료를 처음부터 모두 드러내면,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상품이 경쟁사보다 비싸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리 자체가 규제의 필요성을 입증한다. 투명성이 경쟁력을 해친다면, 그것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다. 진정한 경쟁은 가장 낮은 최종 가격을 제공하는 기업이 이기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초기 가격의 착시로 인한 승리는 경쟁이 아니라 기만이다.

소비자 신뢰 회복이 큰 과제
드립 프라이싱의 광범위한 사용은 소비자의 신뢰 기반을 훼손했다. 온라인 쇼핑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 가격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심각한 문제다. 이는 단순히 개별 거래의 차원이 아니라 전체 전자상거래 생태계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
규제 당국의 관점에서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전체 가격을 초반에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하지만 시장 자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강제 규정에 나서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지의 규제 강화는 이런 신호를 명확히 한다.
결론: 가격 투명성은 기본권
결국 이 문제는 경제학적 원칙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 즉 ‘소비자의 기본적인 정보 접근권’에 관한 것이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구매자와 판매자가 동등한 정보를 가져야 한다는 경제학의 고전적 가정을 상기시킨다.
Trainline, Virgin Atlantic, RED Driving School에 대한 조사는 단순한 적발을 넘어, 기업의 가격 책정 방식이 얼마나 소비자를 기만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규제 당국이 이를 어떻게 바로잡으려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투명한 가격 표시가 모든 기업에 표준이 되는 날이 올 때, 비로소 소비자는 진정한 경쟁의 이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Google Gemini로 생성한 개념 삽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