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는 왜 기록에 실패하는가?
연구자, 특히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병행하는 포닥의 일상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아침에 읽은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 점심시간에 떠오른 실험 수정 방안, 퇴근길에 생각난 코딩 알고리즘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우리는 이 생각들을 붙잡기 위해 수많은 노트 앱을 사용하고 지나쳐갑니다. 에버노트, 노션, 구글 킵, 그리고 최근 각광받는 옵시디언(Obsidian)까지. 하지만 저는 항상 두 가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 동기화의 번거로움: 보안이 중요한 연구 데이터를 상용 클라우드에 올리기는 찜찜하거나, 매번 싱크(Sync) 설정을 맞추는 것이 귀찮습니다.
- 정리의 압박: “옵시디언은 제텔카스텐(Zettelkasten) 방식으로 써야 해"라는 강박 때문에, 막상 글을 작성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수집은 가장 게으르게, 정리는 AI에게, 저장은 가장 완벽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요. 제 개인 워크스테이션과 생성형 AI(Gemini/ChatGPT)를 활용한 저만의 하이브리드 워크플로우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워크플로우 개요: Capture, Process, Store
저의 노트 시스템은 물리적인 서버(워크스테이션)를 기반으로 3단계 파이프라인을 따릅니다. 핵심은 ‘쓰는 뇌’와 ‘정리하는 뇌’를 분리하고, 그 사이를 AI가 연결해 준다는 점입니다.
(▲ 넥스트클라우드에서 수집하고, AI가 가공하여, 옵시디언에 저장하는 흐름도)
- Capture (수집): 넥스트클라우드 (Nextcloud Notes) - 형식 없이 막 적기
- Process (가공): AI (Gemini/ChatGPT) - 핵심 추출 및 마크다운 변환
- Store (저장): 옵시디언 (Obsidian) - 지식의 연결 및 영구 보존
1단계: 넥스트클라우드(Nextcloud), 나만의 프라이빗 Inbox
저는 연구 데이터 분석을 위해 구축해 둔 개인용 워크스테이션(Linux)에 **넥스트클라우드(Nextcloud)**를 호스팅하고 있습니다. 상용 클라우드 서비스(Dropbox, Google Drive)를 대체하는 오픈소스 솔루션이죠.
여기서 제공하는 Notes 앱은 저의 Inbox(수신함) 역할을 합니다.

왜 넥스트클라우드인가?
- 어디서나 접속: 스마트폰 앱, 웹 브라우저, 데스크탑 어디서든 접근 가능합니다. 실험실에서 장갑을 낀 채로 스마트폰으로 입력을 하거나, 외부 미팅 중 노트북으로 빠르게 타이핑할 때 사용합니다.
- 완벽한 보안: 데이터가 제 워크스테이션 하드디스크에만 저장됩니다. 미발표 연구 데이터나 아이디어를 적기에 가장 안전합니다.
- 부담 없는 Plain Text: 제목이나 태그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날짜별로 생성된 파일에 의식의 흐름대로 적습니다.
2단계: AI, 브라운 운동을 결정(Crystal)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때, 넥스트클라우드에는 뒤죽박죽 섞인 메모들이 쌓여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걸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겠지만, 이제는 **AI(Gemini 혹은 ChatGPT)**가 이 역할을 대신합니다.
다시 표현하자면,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을 하듯 흩날리는 생각의 파편들을 모아 단단한 결정(Crystal) 구조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용하는 프롬프트(Prompt) 예시 저는 다음과 같은 프롬프트를 사용하여 AI에게 ‘편집자’ 역할을 부여합니다.
“아래 텍스트는 오늘 내가 두서없이 기록한 메모들이다.
- 잡담이나 단순 할 일(To-do)은 제외해라.
- 연구 아이디어, 논문 인사이트, 코딩 팁 등 영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정보만 추출해라.
- 각 주제별로 옵시디언(Obsidian)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마크다운 포맷으로 변환해라.
- 형식:
## 제목,- 핵심 요약,- 본문,#태그

AI는 놀랍게도 오타가 섞인 문장 속에서도 문맥을 파악하고,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키워드까지 태그로 달아줍니다. 저는 이 결과물을 ‘복사’하기만 하면 됩니다.
3단계: 옵시디언(Obsidian), 제2의 뇌 구축
AI가 정제해 준 텍스트는 최종적으로 제 워크스테이션 내의 옵시디언 보관소(Vault) 폴더에 저장됩니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제텔카스텐의 마법이 일어납니다. AI가 만들어준 파일들을 옵시디언에 넣는 순간, 기존에 쌓여있던 수백 개의 노트들과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 오늘 기록한 ‘단백질 구조 분석’ 메모가 3달 전에 적어둔 ‘Cryo-EM 노이즈 제거’ 메모와 연결됩니다.
- 단순한 ‘기록’이 서로 반응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로 진화하는 순간입니다.
옵시디언은 로컬 마크다운 파일을 기반으로 하므로, 넥스트클라우드와 완벽하게 호환됩니다. 넥스트클라우드가 동기화해 준 폴더를 옵시디언이 읽기만 하면 되니까요. 복잡한 서드파티 동기화 플러그인이 필요 없습니다.
결론: 도구는 거들 뿐, 핵심은 ‘연결’
많은 분들이 완벽한 생산성 도구를 찾기 위해 시간을 씁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도구는 내 생각의 속도를 따라와 주는 도구입니다.
- 기록할 때는 가장 가볍게 (Nextcloud)
- 정리할 때는 가장 똑똑하게 (AI)
- 보관할 때는 가장 체계적으로 (Obsidian)
이 3단 합체 시스템은 물리에서 바이오로 분야를 넓히며 공부할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저에게 가장 든든한 연구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혹시 집에 놀고 있는 PC가 있거나, 개인 서버를 구축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넥스트클라우드를 설치하고 여러분만의 AI 비서가 상주하는 제2의 뇌를 만들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혹은 구글 keep과 같은 메모프로그램으로도 쉽게 워크플로우를 만들수 있습니다.